카테고리 없음

21.03.22_노력과 공정

Donkeykong 2021. 3. 22. 10:34

youtu.be/4AZUOL6hi7s

- 딸의 입학 청탁

- 시험관이 미리 정해져있다.

- 직원과 공모

부정입시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본인의 능력이 부족하면 솔직하게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더욱 노력을 하여 재차 도전하거나,

실력에 맞는 대학에 들어가서 거기서 더욱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을 사랑한다면 더욱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과소평가하는 것 또한 문제이지만 능력에 맞지 않게 과욕을 부리는 것은 더욱 큰 문제라 생각한다.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것도 자신에 대한 사랑이지만, 올바른 방법대로 사는 것도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개인의 문제와는 별개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도 고민하게 된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문제 중 성취지위에 대한 지나친 특권의식을 부여하는 문화가 있지 않나 싶다.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학벌, 자격증과 같은 후천적 지위에 대한 존중은 어느 사회에나 공통된 문화이겠지만 유독 한국사회에서는 이 정도가 심한 것 같다. 심하다는 것은 지위에 대한 존중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지위에서 기인한 계층이 사회에 고착화되어 계층사다리를 이루는 각각의 발판들이 헐거워진다는 의미이다. 가령, 고시 커뮤니티 내 지방대 출신이 고시를 합격하였을 때,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신라의 6두품제도가 연상하게한다. 또한, 우리학교 내에서도 정시와 수시를 구분하고, 수시 내에서도 기회균형을 통한 입학을 구분하여 멸시하기도 하였다.

학벌은 수 많은 개인의 생애 가운데 한 순간의 시험으로 그 사람이 가져야할 평생의 인격이나 노력의 수준이 학벌을 통해 결정되는 것은 가당치 않다. 더군다나 개인의 노력의 수준을 상대적 기준에 따라 평가한다는 것은 개개인의 환경과 위치를 고려하지 못한 채 노력이라는 무형의 것을 유형화하려는 시도이다. 가뜩이나 입시에 작용하는 여러 요소 중 가령, '운'마저 자신의 노력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 한 번 정해진 계급이 고착화되는 현실과 이를 좀처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사실은 결국 폐쇄적이고 닫힌 사회와 같을 것이다. 자유롭게 사다리를 오가지 못하는 사회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는 곧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려고 하는 본성과 어긋나는 것이다.

누구든지 개인의 자유로운 노력으로 위대해질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 변할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은 곧 개인에 본성에 어긋나 도태될 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노력이라는 단어에는 공정이 늘 같이 놓여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