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에서

의무소방 기록

Donkeykong 2019. 11. 25. 17:01

오늘 아침에 이송했던 할머니가 새벽에 작고하였다. 아침, 그리고 새벽을 통틀어도 1시간 남짓 되는 만남이었지만 딱딱하게 굳은 턱을 보며 울음기가 맴돌았다. 가족들이 이별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니 병상에 계신 외할머니가 생각나서 남일 같지가 않아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늦깎이로 시작한 군대에서 맡은 구급활동 보직 특성상 주에 한두 번은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활동이니 이런 비극적인 일은 다반사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경험할 수 없었던 너무 많은 죽음을 접하니 어느덧 근래의 삶의 화두가 죽음을 향해있었다. 불현 듯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잔인하거나 참혹한 광경이 아니었다.

첫 심폐소생술을 하고나서 하루에 4~5잔 마시던 커피를 한동안 마시지 못했다. 커피의 검은 액상이 검붉은 피를 토하던 망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커피를 즐겨하게 되었고 이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경험이 서서히 잊히게 되었다.

나를 ‘죽음’의 사고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것은 의식적으로도 잊기 어려운 것에서 기인한 것이었는데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남겨진 이들이 느낀 상실감과 아픔에 대해 내가 공감했던 기억들이 그러하였다.

수능을 며칠 앞두고 목 메달아 죽은 재수생을 보았다. 그 어린 친구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과 스탠드가 켜진 채로 공부한 흔적이 있는 것을 보니 자살을 택하면서도 끝내 놓지 못했던 나름의 희망과 그 친구가 느꼈을 압박감이 전해왔다. 이미 죽은 지 서너 시간이 흐른 아들을 발견하고 일어나라며 욕을 하고 오열하는 아버지를 보며 그 상실감과 아픔이 나의 감정처럼 생생하여 막막한 기분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천착된 사고를 벗어나려고 교회도 기웃거리고 성당에도 절에도 들어가보았다. 나만의 탈상을 위해서 그곳에서 하나하나의 죽음을 기리며 망자의 명복과 위로를 빌었다. 어쩌면 남은 기간 동안 반복될 상황 속에서 나는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하나하나의 슬픔이 여전히 크게 느껴질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을 겪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를 견뎌냈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상황은 내가 어쩔 도리가 없다. 상황에 대처하여 어떻게 할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있기에 죽음에 마주서는 나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았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대한 물음에 답해보았다.

소소한 행복이 일상으로 메꾸어졌으면... 그리고 나의 소중한 가족 그리고 벗과 함께 건강히 주어진 삶을 충만히 지내었으면.. 존중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